양식과 장식 사이 새로운 경지

런던 베이글 뮤지엄 도산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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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건축]은 기술과 예술의 합의점을 찾는 학문이다. 다르게 표현하면 이성과 감성의 합의점을 찾는다고도 할 수 있다. 오래전 대학에서 한 교수님의 말씀에 크게 감동을 받아 마음속 깊이 새겨진 문장이기도 하며 현실에서 공간을 다루다 보면 허다하게 마주하게 되는 순간이다. 어디까지 합의를 볼 것인가? 이렇게 짧은 문장만 놓고 본다면 추상적인 생각만 막연하게 떠오를 뿐이다. 예를 들어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기술과 이성은 공간에서 기능이다. 공간의 본질은 사람을 보호하기 위함이다. 그렇다 보니 사람이 생활하면서 마주하게 되는 위협이나 위험으로부터 안전해야 한다. 본디 자연재해로부터 몸을 피신해 신변의 안전을 지키던 곳이 공간. 오래전 전했던 이야기 중 ‘루이스 바라간’의 인터뷰 내용을 다시 인용한다면 ‘벽은 본디 인간을 보호하기 위함임을 알아야 한다.’이다. 종종 나의 이야기에 나오는 공간 환경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4계절이 있는 한국에서 공간의 온도 변화를 잡을 수 있는가?’, ‘공간의 목적에 맞게 소음을 적절하게 다루고 있는가?’, ‘공간의 주 이용 목적에 따라 적절한 바닥환경이 조성됐는가?’, ‘건물을 어떠한 자연재해로부터 안전한가?[구조]’, ‘건물에 불이 났을 경우 대피로는 충분히 잘 준비되어 있는가?’ 등 아주 다양한 조건들이 들어있다. 나는 이것을 보통 기본으로 둔다. 그리고 대체로 건축 법규에서 제한하고 있는 것들은 이런 안전과 관련된 이야기들이다.

이 모든 것을 ‘기술과 이성’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예술과 감성’은 무엇인가? 공간은 인간을 보호하는 것을 본질로 하지만 동시에 공간은 삶을 살아가는 주 무대가 된다. 이것이 기능에만 치우쳐 정서적으로 삭막한 환경을 제공한다면 말 그대로 살아만 있는 삶이 될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다시 한번 선대 공간가의 이야기를 빌려 오자면 이런 이야기가 있다. ‘나는 따뜻한 감성의 건축을 믿는다.’. ‘편리’라는 기능적인 이유도 있지만 ‘편안’이라는 심신과 관련된 정서적 이야기도 있다. ‘얼마나 자신의 취향을 반영하고 있는가?’, 그리고 ‘심미적으로 아름다운가?’, ‘심리적인 안정감을 도모할 수 있는가?’, ‘삶에 있어 자주 아름다운 장면을 목격하고 행복을 누릴 수 있는가?’ 등의 이야기들이 이에 해당한다.

위의 요약된 내용들이 바로 ‘예술과 감성’이다.

공간은 이런 ‘기술과 예술’, ‘이성과 감성’의 합의점에서 결과물이 나온다. 오늘의 공간은 특이하게도 이런 기술과 예술의 합의점이라기 보단 새로운 길을 찾아 끝까지 달려 경지에 이른 공간이다.

만약 공간을 영화로 표현한다면 이 공간의 감상평은 ‘시간이 아깝지 않았다 .’이다.

양식은 외형적인 것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사실 양식은 그 시대에 공간 구축 방식에서 오는 외형적 특이점이다. 그 말은 구조의 역할을 하는 경우거나 재료의 한계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는 것들이 과거에 동시다발적으로 생기며 양식화된 것이다. 이를테면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실제로 장식적인 것에 대한 양식도 있습니다. Ex. 도리스, 코린트, 이오니아 등]의 열주의 구축’, 과거 유럽의 석조 건축물과 콘크리트 강도에 따른 층별 창문 크기의 변화’, ‘한옥의 전통 가옥이 목구조를 통해 얼마나 높고 크게 지을 수 있는가에 따라 파생된 외형적 이미지’ 등이 이에 해당한다.

그러나 양식이 무조건 구조적 이유에 따라 형성된 것은 아니다. 가끔은 장식적으로 쓰여 있더라도 그것을 양식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그러나 오늘의 공간은 일부 구조적인 이해를 하고 건물의 외형을 런던 외곽 한편의 카페를 연상시키고 있다. 벽돌로 쌓아 올린 건물의 얼굴. 내부의 벽면도 벽돌이다. 말 그대로 공간의 얼굴만큼은 조적식[벽돌을 쌓아 올린 건물]이다. 그리고 그곳 동네에서 자주자주 보이는 아치형 창이 이 공간에 맞게 잘 들어가 있다. 내부의 인테리어는 정말 유럽의 어디 한 곳을 그대로 가져온 것 같기도 하다. 그것도 아주 유서가 깊은 가게의 모습을 말이다. 곳곳에 주인장의 증명서들이 걸리고 영국 여왕과 왕자의 사진이 놓여 있다. 이곳에 있는 모든 것들은 기능적인 이유가 아니다. 모두 장식이다. 그러나 도시적 맥락과 상관없이 공간의 얼굴을 보고 들어온 공간은 금세 다른 나라에 왔다는 감상에 빠지게 한다. 나무로 된 계단과 벽면의 색 그리고 바닥의 삐걱거리는 소리 모두 오래된 공간의 공감각적인 현상을 모두 그대로 가져온 것 같다.

일부 구조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익스테리어와 인테리어를 통해 공간으로 사람을 끌어들이며 진짜라고 믿게 만드는 것. 그 어떤 공간가도 이를 진짜가 아니라고 말할 수 없는 경지까지 올라가 버렸다.

이층으로 가서 마주하게 되는 장면들은 입구로부터 걸어들어온 지 꽤 되어 그런지 창밖의 풍경과는 상관없이 어디 다른 나라에 와있다는 감상이 극대화된다. 바닥과 창, 천장이 모두 기능적으로 아주 완벽하게 작동하지 않지만, 장식과 양식의 이해를 통해 구현된 환상이 이쯤 되면 기능은 저 먼발치로 밀어두고 공간을 즐기게 한다. 기능이 아주 잘못된 곳도 아니다. 대체로 큰 문제는 발생하지 않도록 준비되어 있다. 그러니 어쩌면 이들도 이미 그들의 기준에서 ‘기술과 예술’ 그리고 ‘이성과 감성’ 어딘가에서 그들만의 합의점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닐까? 심지어 설득력을 갖추고 있으니 나는 감탄을 할 수밖에 없다.

나의 입장에서 이곳은 새로운 경지이다.

더군다나 이 공간의 주목적인 베이글이 맛있고 이쁘게 나온다. 모든 게 철저하게 준비되었다.

이곳은 양식과 장식 사이 새로운 경지를 보여주는 공간 신사의 ‘런던베이글뮤지엄도산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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