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수제비 뜨던 곳

부산 회동수원지 선유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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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곳에 아주 어릴 때부터 살았었다. 주말 새벽이면 아버지와 일찍 일어나 디즈니월드를 보고 동래여고 산길을 지나 회동수원지로 모험을 떠났었다. 몇 없는 아버지와의 추억이다. 새벽녘 안개가 자욱한 날. 회동수원지는 영화나 소설에나 나올법한 몽환적인 감상이 지배적인 곳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처음으로 물수제비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무거운 돌이 물에 가라앉지 않고 통통 튀어 저 끝까지 가던 모습이 공간의 지배적 감상과 만나 더욱 환상적으로 변해갔었다. 당시의 아버지를 생각하면 참 거대하게 느껴졌었다. 안되는 것도 되게 하는 사람 같아 보였다.

그러고 9살이 되던 해 나는 이 동네를 벗어났다.

고등학교에 진학할 무렵 집과는 아주 멀었지만 희한하게도 나는 다시 이곳으로 돌아왔다. 회동수원지앞편에 놓인 한국의 호그와트 ‘브니엘 남자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그곳에서 3년간 사람됨을 배우는 동안 나와 나의 학우들은 수많은 실수를 저질렀었다. 그중 하나, 4.19일에 맞춰 매년 학교를 단체로 째는 날. 전교생이 걸리지 않고 도망가기 위해선 다양한 경로를 통해 도망가야 했다. 한 번은 학교 뒤편의 철망을 넘어 나왔더니, 오늘의 공간이 위치한 곳으로 나왔었다. 수원지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니 아름다운 풍경에 도망이라는 생각도 못 한 채 친구들과 여유롭게 물수제비를 뜨며 집으로 향했다. 물론, 다음날 등굣길에 입구에서부터 한 대씩 맞고 들어갔다. 모두가 도망을 쳤기에 예외 없이 아침부터 엉덩이를 부여잡고 교실로 향하는 풍경.

요즘 유명 스트리머침펄님의 말을 빌리자면, 아이러니한 ‘낭만’이 있던 시절에 살았다.

대학에 들어가기 직전, 사귀었던 여자친구와도 이곳을 왔었다. 이 수원지에 담긴 나의 이야기를 처음부터 조잘거리며 웃고 걷던 곳이다. 당시 여느 남자아이들과 다를 것 없었던 소년인 나는 여자친구에게 멋진 것을 보여주겠다며, 어린 시절 배운 물수제비를 떠 보이며 그렇게 으쓱대곤 했다. 잔잔하게 잠방이는 물표면에 햇빛이 비치면 온 사방이 반짝거리는 윤슬로 가득 차 요정의 세상에 와있는 것 같은 감상이 들기도 했다. 그렇게 이곳은 나에게 아름답게 남았다.

그러고 10년이 지난 오늘.

은사님께 내 책을 전하고자 일찍 일어나야 했지만, 불면증을 못 이겨 아침 늦게 일어나버린 나는 선생님을 뵙지 못했다. 아쉬운 마음에 회동수원지를 찾았고, 오늘의 공간은 수십 년의 내 기억에 새로운 기억을 덮어씌운다.

아름답게 남은 이 수원지의 일원, 예전과는 많이 달라진 모습에 당황스럽기도 하지만 수원지는 여전히 아름답다. 그 수원지를 느긋하게 내려다보는 공간. 잠방이는 윤슬 같은 외관과 천장의 마감은 이 공간이 수원지와 함께하고자 함을 잘 드러내고 있다. 3동으로 나뉘어 넓은 면적과 각기 다른 방식으로 수원지를 경험하게 하는 이 공간의 매력은 나의 오랜 기억의 아름다움과 맞먹는다. 몇 식당을 제외하고, 몇 민가를 제외하고 아무것도 없던 이 땅이 낯설지만, 회동수원지를 바라보며 느끼는 과거의 이야기들이 다시 이곳을 익숙하게 만든다.

돌아서는 길에 돌아본 인생을 곱씹으며 다시 물수제비를 뜬다.

참방참방,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이상향’, 몽환의 ‘별천지’. 나에게 이곳은 도원이라는 이름이 어울리는 곳이다. 언제나 공간은 주관에 의해 해석된다고 전하며 공간을 소개한다.

이곳은 부산 회동수원지의 ‘선유도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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