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A와 백화점ㄱ

광교 갤러리아 백화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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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적 백화점의 규칙을 이야기해야 한다.
근대의 공간가들이 자행해오던 방식. 쉽게 말해 조금 비판적으로 이야기한다면 ‘내가 이렇게 구상했으니, 이렇게 쓰는 게 어떻겠니?’라는 말이다. 조금 더 상세하게 말해 공간의 기능을 이렇게 구성했다. 이것을 백화점으로 본다면 ‘물건을 계속 보고 돌며 사게끔 했다. 그러니 그렇게 써야 한다.’라는 말이다.

그 ‘물건을 계속 보고 돌게’하는 백화점의 규칙은 많은 사람이 알고 있다.

첫 번째, 백화점에는 창문과 시계가 없다. 이는 공간에 입장한 순간 도시의 배경과 완전한 단절을 만들어 시간의 개념을 인지하지 못하게 하는 방법이다. 그렇기 때문에 환상적인 상업의 공간들이 눈을 즐겁게 하는 동안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인지할 수 없게 하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업무공간에 창문과 시계가 없다면 근무자가 퇴근 시간이 다가왔는지 알 수 없게 하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두 번째, 백화점의 메인 수직 동선 공간은 공간의 한 가운데 위치하며 지하철 2호선처럼 바로 환승해서 올라가는 구조가 아니다. 말 그대로 올라가는 방향의 에스컬레이터를 반대쪽에 두어 최소한 공간을 반 바퀴 돌게 만드는 구조이다. 오르는 곳으로 이동하는 사이 상업 공간을 도시의 공간의 길목처럼 마주하게 된다. 다양한 상업 공간이 만드는 이벤트를 즐기는 방식이다.

이 두 가지가 백화점 A의 보편적인 약속이자 규칙인 셈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백화점A, 백화점B, 백화점C를 보편적인 관점에서 모두 백화점이라고 분류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의 공간처럼 요즘의 백화점ㄱ은 그 보편성을 동일성의 차이로부터 유사성을 인지하고 수많은 차이를 인정해 순수가치로 환원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 이 개념은 프랑스의 유명 철학자 ‘질 들뢰즈’의 ‘차이’라는 개념을 통해 들춰볼 수 있다.

요약건대, ‘독립적인 새로움을 보인다’라고 말하고 싶다.

오늘의 공간은 세계적인 공간가 ‘렘 콜하스’의 작품이다. 그의 저서 전반에 걸쳐 공간을 잠깐 살펴보겠지만 중점적으로 ‘S, M, L, XL’이라는 책에서 XL 파트의 이야기를 다루며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

‘우리는 위험천만하게도 고갈되어 버린 미사여구나 어휘에 애써 사로잡힌 체 불구가 되어가고 있다.’[인용1]

‘60년대의 모더니즘 공간가들이 자신의 직능을 저버렸다.’[인용2]라고 비판한다. 사회의 변화를 긴밀하게 살피고 그에 맞는 그리고 앞으로 유효할 새로운 공간을 그려 나가야 하는 공간가들이 그러지 않고 과거로부터 관습처럼 혹은 정답처럼 행해 저온 공간의 규칙을 들먹이며, 변화를 거부하고 스스로 새로움을 외면하고 있다고 해석된다.

그런 그가 이 책을 통해 말하는 XL은 과포화 된 그리고 고도로 상업화 돼가는 이 현대 도시에서 공간가가 사용해온 언어가 더 이상 의미가 없다고 판단되는 새로운 규모의 공간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도시로 혹은 하나의 건물로 봐야 할지 의논해 봐야 한다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동시에 ‘공간가의 역할을 더 이상 없는가?’에 대한 의문에 그는 자기 작품으로 대답하고 있다.

오늘의 공간은 아주 거대하다. 대형 자본이 들어간 초대형 상업 시설로 근대로부터 자행 되어온 공간의 구성 요소 들을 무의미하게 만든다. 이를테면, 공간의 얼굴을 통한 내부 공간 장면의 은유[공간의 얼굴을 통해 내부의 실기능이 어떻게 구성될 것이라는 표현법]라던지 혹은 단일 된 공간의 장면들의 구성[공간이 보여주는 장면이 벽과 방이라는 표현 단위로 구분되어 하나의 장면만 보여주는 방식]이라던지 여러 가지의 그 언어를 파괴하고 있다.

위에 언급된 내용들은 이 건물에 일부 적용되는 듯 보이지만 반 이상은 그것을 전혀 따르지 않고 있다. 공간은 보편적 백화점이 가진 규칙부터 파괴한다. 중심에 수직으로 이동하는 이동 공간이 에스컬레이터가 있고 그것을 돌게 하는 것도 맞지만 비대칭적으로 방향을 틀어가며 정적인 동선을 파괴한다. 이것은 약과다. 백화점이라 하면 본디 구석진 곳의 엘리베이터와 정확한 방식의 에스컬레이터만이 위아래로 층을 이동하는 수단이겠지만 이 공간은 입장과 동시에 그 보편적 백화점이 가진 특징들을 무시하고 바로 건물 외곽면을 통해 백화점을 산책하듯 오르는 방식을 입구에서부터 제안한다.

백화점의 한 모퉁이로 들어가면 가운데 공간에 집중되기보다 넓고 높은 전이 공간이 왼편의 거대한 에스컬레이터와 함께 등장한다. 내부의 이동 동선이 보이기보다 자연스럽게 왼편의 건물 외표면 따라 오르는 수직 동선과 마주한다. 그곳의 기능은 알 수 없다. 단지 도시에서 걸어 들어와 연속적으로 다시 도시를 걷고 있다는 감상이 지배적이다. 도시적 관점에서 거대한 덩어리로 읽히는 오늘의 공간은 외표면 유리관이 계속해서 휘감고 있다. 이 길을 따라 오르다 보면 이상함을 마주한다. 백화점의 내부 공간과는 연결된 듯 아닌 듯 공적인 공간인 도시의 가로와 같은 유형으로 나타난다. 길에 배치된 벤치가 보이고, 카페를 만날 수 있다. 동시에 소광장 같은 곳이 나와 아무 목적 없이 공간을 즐긴다. 외부로 보이는 도시의 전경을 즐기는 독특한 경험도 함께한다. 그러나 재미나게도 백화점이라는 상업적 목적에 맞게 조금만 시선을 돌리면 다시 상업의 영역으로 경계를 허물어 볼 수 있다. 인지적 경계를 허물고 자유롭고 복잡한 이동 동선을 통해 공간의 속성을 엮었다 풀기를 반복하며 상업과 공공공간의 기능적 경계를 해체한다.

이렇게 그 유리관 산책로를 따라 경험하다 보면 이곳이 백화점이냐는 의문이 든다. 유사 전망대와 카페, 로드샵, 책방 그리고 자유로운 공공공간의 성격을 띤 열린 공간들의 연속은 백화점의 속성 보다는 도시의 경험에 가까워 보인다. 그러나 여전히 이곳은 백화점이다. 그 건물의 덩어리를 휘감는 유리관을 빠져나와 덩어리의 중심으로 가면 또 전통적인 백화점의 규칙들이 보인다. 그러나 여전히 열린 유리관을 통해 도시의 배경을 내부로 끌어들이며 보편의 백화점에 새로운 감상을 던진다.

도시에서 보편적인 공공공간을 나열하라고 한다면 ‘광장, 공원, 가로’등을 들 수 있다. 한국 사회에 비추어 보면 이곳이 잘 작동하고 있는 곳은 극히 드물다고 판단할 수 있지만, 세계적인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분명 지금도 그 역할을 톡톡히 하는 곳이 많다. 그러나, 역시 한국이라는 배경을 두고 살펴본다면 오히려 그 실효성 있는 공공공간의 부재를 상업 공간이 해결하는 풍토가 오히려 만연한 지금 이 공간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더욱 강력해진다.

목적 없는 방황과 공공공간에서 사람들이 공간을 즐기는 다양한 방식이 이곳에서는 자주 관찰된다. 에스컬레이터라는 이동 방식에 도시의 벤치라는 요소가 결합하고, 길을 걷다 마주하는 다양한 종류의 상업 공간, 그리고 대화를 엿듣고 살펴본 결과 작은 단위의 무리가 약속 장소로도 이용하며, 미셸 푸코의 *헤테르토피아적 성격도 띠는 듯하다. [*현실의 공간이지만 신화적 공간으로 표현된다. 존재하지 않는 유토피아지만 실제로 존재하며 개인과 작은 집단의 일컫는 신화적 장소로서의 표현이다]

이렇게 거대한 공간에서의 공공공간은 수직 이동을 돕는 공간의 요소와 ‘거대하게 열림[VOID]’이라는 개념과 만나 그 역할을 톡톡히 한다. 그러나 이것이 근대적 맥락에서 표현할 수 있었던 공간인가? 라는 물음에 나는 ‘아니다’라고 답하고 싶다.

‘건설된 축약적 도시의 이미지’라는 문장이 오히려 더욱 와 닿는다.

단일 건축인가 혹은 도시인가? 에 대한 생각에 나는 사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 있지만 아직 이것은 모두가 함께 생각하며 각자의 주장을 펼쳐야 하는 난제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이곳은 독립성을 가진 특별한 백화점ㄱ ‘광교 갤러리아 백화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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