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rchitecture + Branding
Querensia
영혼의 쉼터
-Residence Building
- Architecture, Interior, Concept, Branding
- Icheon, 2022
케렌시아 _ 영혼의 쉼터
투우하는 소가 마지막 일전을 치르기 전에 숨을 가다듬는 마지막 공간이다. 최후의 안락을 위한 공간인 만큼, 그 단어가 내포하는 경험은 감히 말로 설명할 수 없다. 어찌 보면 매일 같은 일을 반복하고 같은 공간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직장인들은 데스크야말로 케렌시아로 변하기 딱 좋은 공간이다. 요즘은 젊은 세대 층에서 많이들 하고 있다는 데스크테리어. 이런 신조어가 나온 것만 보아도 이들이 일하는 곳에서 각자의 안식과 휴식을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지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왜 직장에서 자신의 안식처를 꾸리는 행위를 하는지에 대해 집중할 필요가 있다. 단순히 대부분의 시간을 직장에서 있기 때문보다, 주거라는 공간이 빈약했던 건 아닐까? 라고 말이다.
-
투우의 마지막 방이라는 말로 생을 담은 방이자 휴식의 끝자락이라 말 할 수 있지만, 우리 인간도 생의 전선에서 매일같이 생을 위한 사투를 벌이니 ‘케렌시아’야말로 현대 사회 직장인들을 위한 공간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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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가 그 케렌시아의 가장 적합해야 할 공간의 유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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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같이 아침에 나가서 저녁에 들어오는 직장인. 하루를 나갔다 오면 실상은 집에서 보내는 시간은 적다. 그러나 마음의 안식이라는 맥락에서 집만 한 것이 있을까? ‘My Sweat Home’이라는 대사는 많은 것을 담고 있다. ‘가장 나다울 수 있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만 있는, 나만을 위한’ 오롯이 개인의 생활을 위해 필요한 모든 것들이 담긴 곳이다. 육체적 피로를 녹이는 것뿐만 아니라 정신적 피로를 푸는 것에 좀 더 집중하는 것이 바로 케렌시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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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우리는 실제로 머물 공간의 시간을 살펴봐야 한다. 9-18시, 주거 공간에서 해가 거실로 들어와야 한다는 시간이다. 그러나 집이 가장 밝고 포근한 시간에 우리는 매일 일터에 있다. 남향이 중요한가? 해가 뉘엿뉘엿 떨어지는 해 질 녘이 되고서야 들어오면 이미 나의 케렌시아는 빛을 볼 수 없다. 오히려 칙칙하고 우울한 외로움에 휩싸여 영혼 없는 몸만이 휴식을 취하게 되는 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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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다 떠오르는 해와 출근 준비를 하고, 매일 같이 생의 전선을 치열하게 버티고 들어온 공간에 짙게 산을 넘어가는 태양이 비추는 아름다운 하늘을 바라본다면 어떨까? 짜릿하게 지는 붉은 태양 빛으로 물든 창 밖의 정원은 스페인의 붉은 카펫으로 산을 휘감고 황홀한 순간을 만들지 않을까? 그것이야말로 정신적 경험을 통한 쉼이다. 다시 인생이라는 연극의 주인공인 ‘나’는 집이라는 무대에 화려한 등장을 한다. 태양과 정원의 선물을 받으며, 나의 삶으로 나의 보금자리로 영혼을 눕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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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군다나 1층에 준비된 공용 공간이야말로 퇴근 후 마음 맞는 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자신들의 이야기로 채워갈 갈 또 다른 아지트가 될 것이다. 작지만 영혼을 위해 필요한 것들은 충분하다. 동쪽에서 해가 뜨면 같이 나오고 서쪽으로 해가 누우면 그곳의 반대편에 나의 영혼도 함께 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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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모 보다, 삶에 천착한 영혼의 쉼터. 정신적 휴식은 이곳에서 오지 않을까?
# Architecture + Branding
Querencia, 영혼의 쉼터
- Residence Building
- Architecture, Interior, Concept, Branding
- Icheon, 2022
케렌시아 _ 영혼의 쉼터
투우하는 소가 마지막 일전을 치르기 전에 숨을 가다듬는 마지막 공간이다. 최후의 안락을 위한 공간인 만큼, 그 단어가 내포하는 경험은 감히 말로 설명할 수 없다. 어찌 보면 매일 같은 일을 반복하고 같은 공간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직장인들은 데스크야말로 케렌시아로 변하기 딱 좋은 공간이다. 요즘은 젊은 세대 층에서 많이들 하고 있다는 데스크테리어. 이런 신조어가 나온 것만 보아도 이들이 일하는 곳에서 각자의 안식과 휴식을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지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왜 직장에서 자신의 안식처를 꾸리는 행위를 하는지에 대해 집중할 필요가 있다. 단순히 대부분의 시간을 직장에서 있기 때문보다, 주거라는 공간이 빈약했던 건 아닐까? 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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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우의 마지막 방이라는 말로 생을 담은 방이자 휴식의 끝자락이라 말 할 수 있지만, 우리 인간도 생의 전선에서 매일같이 생을 위한 사투를 벌이니 ‘케렌시아’야말로 현대 사회 직장인들을 위한 공간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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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가 그 케렌시아의 가장 적합해야 할 공간의 유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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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같이 아침에 나가서 저녁에 들어오는 직장인. 하루를 나갔다 오면 실상은 집에서 보내는 시간은 적다. 그러나 마음의 안식이라는 맥락에서 집만 한 것이 있을까? ‘My Sweat Home’이라는 대사는 많은 것을 담고 있다. ‘가장 나다울 수 있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만 있는, 나만을 위한’ 오롯이 개인의 생활을 위해 필요한 모든 것들이 담긴 곳이다. 육체적 피로를 녹이는 것뿐만 아니라 정신적 피로를 푸는 것에 좀 더 집중하는 것이 바로 케렌시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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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우리는 실제로 머물 공간의 시간을 살펴봐야 한다. 9-18시, 주거 공간에서 해가 거실로 들어와야 한다는 시간이다. 그러나 집이 가장 밝고 포근한 시간에 우리는 매일 일터에 있다. 남향이 중요한가? 해가 뉘엿뉘엿 떨어지는 해 질 녘이 되고서야 들어오면 이미 나의 케렌시아는 빛을 볼 수 없다. 오히려 칙칙하고 우울한 외로움에 휩싸여 영혼 없는 몸만이 휴식을 취하게 되는 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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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다 떠오르는 해와 출근 준비를 하고, 매일 같이 생의 전선을 치열하게 버티고 들어온 공간에 짙게 산을 넘어가는 태양이 비추는 아름다운 하늘을 바라본다면 어떨까? 짜릿하게 지는 붉은 태양 빛으로 물든 창 밖의 정원은 스페인의 붉은 카펫으로 산을 휘감고 황홀한 순간을 만들지 않을까? 그것이야말로 정신적 경험을 통한 쉼이다. 다시 인생이라는 연극의 주인공인 ‘나’는 집이라는 무대에 화려한 등장을 한다. 태양과 정원의 선물을 받으며, 나의 삶으로 나의 보금자리로 영혼을 눕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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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군다나 1층에 준비된 공용 공간이야말로 퇴근 후 마음 맞는 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자신들의 이야기로 채워갈 갈 또 다른 아지트가 될 것이다. 작지만 영혼을 위해 필요한 것들은 충분하다. 동쪽에서 해가 뜨면 같이 나오고 서쪽으로 해가 누우면 그곳의 반대편에 나의 영혼도 함께 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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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모 보다, 삶에 천착한 영혼의 쉼터. 정신적 휴식은 이곳에서 오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