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송 전형필 선생님을 알게 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몇 해 전 한참 역사 공부를 좀 더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유튜브를 통해 이리저리 강의를 훔쳐볼 때의 이야기다. 그러던 중 알고리즘이 전해주는 경로에 따라 전형필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1942년 일본인 몰래 11,000원을 주고 구입한 오래된 서적. 11,000원은 당시 기와집 10채에 맞먹는 금액이었고, 그 서적은 ‘훈민정음해례본’이다. 한글의 창제원리를 담아둔 훈민정음의 원서. 거금을 들여 구비한 이 책은 해방 이후 학자들에게 영인본을 공개하며, 한글 연구에 큰 도움을 주었다. 그가 그 시대 상황 속에 어려움을 딛고 이 책을 구해내지 않았더라면 우리 한글의 창제이유가 ‘백성의 문맹 퇴치를 위해 창제된 인류 최초의 언어’임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또한 창제원리인 ‘발음기관을 본떠 만든 최초의 언어’라는 것도 알려지지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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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송 전형필 선생님은 이런 인물이다. 본디 아주 유복한 집안에 태어나 살았지만, 일제강점기에서 우리의 문화를 지키고 보전하는 데 큰 목적을 둔 인물이다. 그런 그가 해방을 꿈꾸며 그 이후 문화를 통해 민족의 얼을 되살리겠다고 다짐한 마음을 여럿으로 드러난다. 그러나 오늘은 그의 이름을 딴 공간 ‘간송미술관’만 다루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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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디 이름은 ‘보화각’이었다. 공간의 목적은 문화재, 고미술의 보호 및 수집 뿐 아니라 우리 문화재를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정리하기 위해 지어진다. 한국 최초의 근대식 미술관이다. 1938년 개관한 이 미술관은 아직 광복을 맞지 못한 시기에 모습을 드러낸다. 그 당시 한국인 최초로 근대식 건축 교육을 받은 건축가 박길룡에 의해 설계되었다. 건물의 표면에 여백의 미가 가득한 것이 우리의 미술품과 닮은 것 같기도 하다. 근대적 방식이지만 그 건물 얼굴의 표현법이 옆에 새로 지어진 현대식 별관의 얼굴과 닮았다. 근대적이지만 합리적이고 아름답다. 그래서 그런지 건물의 덩어리가 좀 더 잘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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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공간은 2개의 층을 통해 전시를 전하고 있다. 1층의 일부 유물을 전시하고 2층에는 문화재를 담던 보석함에서 문화재가 되어버린 이 공간 자체를 전시하고 있다. 잘 짜인 바닥 그리고 미술품과 서적을 보관하던 장. 하얗고 높은 천장과 잘 어울리는 길고 높은 철제 창틀. 천장에 달린 동그란 조명. 그 공간의 모든 모습은 조화롭게 어울린다. 더군다나 투명창이 아닌 모자이크 창을 써 빛이 직선적으로 들어오지 않고 산란하여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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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이곳은 문화재를 보호하던 공간에서 2019년부터는 이 공간 자체도 문화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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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문화재를 보호하고 그것을 통해 민족의 얼을 지키고자 했던 한 사람의 의지는 80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에는 문화재 자체가 되었다. 이 공간을 따로 크게 설명하지 않아도 이미 너무 유명한 공간이다. 오랜 세월이 지나 이제는 이곳에 전시 중인 문화재처럼 ‘보전’해야 할 필요가 생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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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만큼 마지막으로 이 간송미술관의 본모습을 전시하고 있다. 6월 5일 전시가 끝나면 이 공간은 보수에 들어간다. 다시 역사를 통해 우리를 다잡을 수 있는 기억의 공간으로서 오래 역할을 하기 위함이라면 어쩔 수 없다. 다시 살아나야 공간으로서 남은 임무를 완수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어떤 생각을 거처 새로운 모습으로 나올지 무척이나 기대된다. 간단한 정비일지 혹은 이 공간의 본을 좀 더 잘 살려낸 새로움일지 알 수 없으나 나는 지금의 모습을 기억한 것에 조금 더 의미를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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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문화재를 담던 보석함에서 문화재가 된 공간 성북의 #간송미술관 이다.
간송 전형필 선생님을 알게 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몇 해 전 한참 역사 공부를 좀 더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유튜브를 통해 이리저리 강의를 훔쳐볼 때의 이야기다. 그러던 중 알고리즘이 전해주는 경로에 따라 전형필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1942년 일본인 몰래 11,000원을 주고 구입한 오래된 서적. 11,000원은 당시 기와집 10채에 맞먹는 금액이었고, 그 서적은 ‘훈민정음해례본’이다. 한글의 창제원리를 담아둔 훈민정음의 원서. 거금을 들여 구비한 이 책은 해방 이후 학자들에게 영인본을 공개하며, 한글 연구에 큰 도움을 주었다. 그가 그 시대 상황 속에 어려움을 딛고 이 책을 구해내지 않았더라면 우리 한글의 창제이유가 ‘백성의 문맹 퇴치를 위해 창제된 인류 최초의 언어’임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또한 창제원리인 ‘발음기관을 본떠 만든 최초의 언어’라는 것도 알려지지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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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송 전형필 선생님은 이런 인물이다. 본디 아주 유복한 집안에 태어나 살았지만, 일제강점기에서 우리의 문화를 지키고 보전하는 데 큰 목적을 둔 인물이다. 그런 그가 해방을 꿈꾸며 그 이후 문화를 통해 민족의 얼을 되살리겠다고 다짐한 마음을 여럿으로 드러난다. 그러나 오늘은 그의 이름을 딴 공간 ‘간송미술관’만 다루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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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디 이름은 ‘보화각’이었다. 공간의 목적은 문화재, 고미술의 보호 및 수집 뿐 아니라 우리 문화재를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정리하기 위해 지어진다. 한국 최초의 근대식 미술관이다. 1938년 개관한 이 미술관은 아직 광복을 맞지 못한 시기에 모습을 드러낸다. 그 당시 한국인 최초로 근대식 건축 교육을 받은 건축가 박길룡에 의해 설계되었다. 건물의 표면에 여백의 미가 가득한 것이 우리의 미술품과 닮은 것 같기도 하다. 근대적 방식이지만 그 건물 얼굴의 표현법이 옆에 새로 지어진 현대식 별관의 얼굴과 닮았다. 근대적이지만 합리적이고 아름답다. 그래서 그런지 건물의 덩어리가 좀 더 잘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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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공간은 2개의 층을 통해 전시를 전하고 있다. 1층의 일부 유물을 전시하고 2층에는 문화재를 담던 보석함에서 문화재가 되어버린 이 공간 자체를 전시하고 있다. 잘 짜인 바닥 그리고 미술품과 서적을 보관하던 장. 하얗고 높은 천장과 잘 어울리는 길고 높은 철제 창틀. 천장에 달린 동그란 조명. 그 공간의 모든 모습은 조화롭게 어울린다. 더군다나 투명창이 아닌 모자이크 창을 써 빛이 직선적으로 들어오지 않고 산란하여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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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이곳은 문화재를 보호하던 공간에서 2019년부터는 이 공간 자체도 문화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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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문화재를 보호하고 그것을 통해 민족의 얼을 지키고자 했던 한 사람의 의지는 80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에는 문화재 자체가 되었다. 이 공간을 따로 크게 설명하지 않아도 이미 너무 유명한 공간이다. 오랜 세월이 지나 이제는 이곳에 전시 중인 문화재처럼 ‘보전’해야 할 필요가 생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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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만큼 마지막으로 이 간송미술관의 본모습을 전시하고 있다. 6월 5일 전시가 끝나면 이 공간은 보수에 들어간다. 다시 역사를 통해 우리를 다잡을 수 있는 기억의 공간으로서 오래 역할을 하기 위함이라면 어쩔 수 없다. 다시 살아나야 공간으로서 남은 임무를 완수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어떤 생각을 거처 새로운 모습으로 나올지 무척이나 기대된다. 간단한 정비일지 혹은 이 공간의 본을 좀 더 잘 살려낸 새로움일지 알 수 없으나 나는 지금의 모습을 기억한 것에 조금 더 의미를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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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문화재를 담던 보석함에서 문화재가 된 공간 성북의 #간송미술관 이다.